1. 주인공 소개: 파이, 그는 누구일까?
한 작가가 파이를 찾아와 소설을 쓰고 싶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데서 파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 파이는 인도 소년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형제 중 둘째로 자랐습니다. 호기심이 많고 대담한 면도 있는 파이는 어느 날 그의 형 라비와 함께 호랑이에게 직접 먹이를 주러 가는데요. 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화가 나서 산양이 산 채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여주며 야생 동물의 잔인함을 파이에게 똑똑히 각인시킵니다. 한편 파이는 어려서부터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가집니다. 신앙과 종교에 관심이 깊어 그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의식에 참여하지만, 세 가지 종교를 동시에 믿을 수는 없다며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하지요.
파이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일화가 숨어 있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Piscine Molitor Patel)이지만, '오줌을 누다'라는 뜻의 피싱(pissing)과 발음이 비슷해 학교 친구들에게 오줌싸개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합니다. 이렇게 놀림을 당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새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할 때 칠판에 π = 3.14를 쓰고는 스스로를 파이(Pi)라는 별칭으로 불러달라고 이야기하지요. 들어가는 수업마다 이 소개를 반복하자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결국 그는 흥미롭고도 멋진 새 이름 '파이'로 불리게 됩니다.
2. 줄거리 소개: 태평양 한가운데에 표류하다
어느 날, 점점 줄어가는 국가 지원에 파이의 가족은 동물원을 정리하기로 결정합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 동물들을 모두 팔고 새 출발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던 중 강한 폭풍우를 만나 파이의 가족과 동물들이 탄 배는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합니다. 가족을 모두 잃은 파이는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타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 호랑이와 표류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얼룩말과 오랑우탄은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고, 하이에나와 파이가 대치하던 순간, 리처드 파커가 불쑥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잡아먹습니다.
이제 망망대해의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 남았습니다.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죽일까도 잠시 고민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리처드 파커에게 먹이를 주고 조련하며 공존하는 법을 익힙니다. 물과 식량을 구하고 구명보트에 연결한 작은 뗏목 위에서 생존해나가며, 파이는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리처드 파커가 있었기 때문에 파이는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그를 돌보는 것에 생존의 의미를 두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파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처드 파커는 깊은 바닷속을 바라보고 파이를 응시하기도 합니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또다시 강한 천둥번개와 폭풍우를 만납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파이는 신이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과 두려움을 주는지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소리칩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심정으로, 굶어 죽어가는 리처드 파커를 보며 눈물을 흘리다 기절한 파이는 죽기 직전 작은 섬에 도착합니다. 해초로 뒤덮이고 미어캣으로 가득한 이 신비한 섬에서 잠을 청하려던 순간 파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밤이 되자 미어캣들이 나뭇가지 위로 올라오고, 연못에 떠다니던 물고기들이 모두 죽은 것이죠. 알고 보니 이 섬은 밤이 되면 연못이 산성화되고, 식물이 육식을 하는 식충섬이었습니다. 낮에는 희망을, 밤에는 절망을 주는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한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함께 섬을 빠져나옵니다.
마침내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탄 구명보트가 멕시코의 한 해변에 가 닿습니다. 앞장서서 걸어간 리처드 파커는 밀림 입구에서 잠시 멈추어 섭니다. 모래사장 위에 쓰러진 파이는 리처드 파커가 고개를 돌려 작별 인사를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이의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립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구조된 파이는 살았다는 기쁨 때문이 아니라, 작별 인사도 없이 가 버린 리처드 파커가 야속해서 엉엉 울며 밀림을 쳐다봅니다. 그의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리처드 파커는 단지 짐승에 불과했던 걸까요? 파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리처드 파커와 진실한 교감을 했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배의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선박회사 직원들에게 파이는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를 믿지 않고 계속 다그치자, 파이는 처음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현실적이고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현실적이지만 더욱 잔인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지만 어떤 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입증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진실이었을까요? 신의 존재 여부가 믿음의 문제인 것처럼, 이 둘 중 어느 것을 믿느냐는 결국 믿음의 문제라는 열린 결말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감상평: 용기와 인내로 '사는 법'을 그려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배가 침몰하고, 설상가상으로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표류하게 된 상황에서 수백 일을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거친 바다뿐만 아니라 야생의 맹수 호랑이 역시 파이의 생존에 크나큰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훈련하고 힘들 때는 의지하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와 인내를 보여줍니다. 폭풍우를 만나고 식충섬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오면서도 끝까지 삶을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의지를 잃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파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인생은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도 있는 어려움을 마주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살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거친 폭풍우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만이 결국에는 한 섬에 가닿아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리처드 파커는 어쩌면 파이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내면의 힘을 호랑이에 비유해 형상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배 위에는 파이뿐만 아니라, 파이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표류하는 배 위에 남은 것이 파이였는지,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 호랑이였는지, 아니면 그 둘 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교훈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한 영상미입니다. 바닷속 해파리 떼가 빛나는 모습, 캄캄한 밤하늘과 바다에 별이 박혀있는 모습, 잔잔한 바다 위로 비치는 노을 지는 하늘 등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 하나입니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및 시각 효과상 등을 거머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며, 본인의 삶에서 빛나는 순간들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상상하고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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